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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1겨울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

13. 라고스 / 2021. 12. 05.

by jaemjung 2022. 3. 30.

리스본을 떠나 라고스로 가는 날.

 

전날 너무 늦게까지 즐겨버린 나머지 아침에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아침 9시 버스였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7시 50분...

미친 듯이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한 후 버스 터미널로 후다닥 달려갔다.

 

전날의 업보를 맞고 정신이 아득해진 나.

그런데 리스본의 버스 터미널은 어찌 이리도 넓으면서도 헷갈리는지. 한참을 헤매다 출발하기 직전의 버스를 가까스로 잡아 탈 수 있었다.

버스에 탄 이후에는 바로 기절을 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와중에 동영상을 몇 개 찍어놓은 모양이다.

 

리스본을 떠나 라고스로 향하는 길에 테주강을 건너가야 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찍은 동영상이다. 믿기지 않지만 바다가 아니라 강이다...

 

 

이건 라고스에 가까워질 무렵 잠에서 깼을 때 찍은 동영상. 새하얀 벽에 오렌지 빛의 기와지붕을 얹은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게 리스본과는 아주 다른, 시골 느낌이 물씬 났다.

 

그렇게 3시간 반 정도를 달려 라고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고스는 여름 휴양도시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겨울인 지금은 사람들이 없이 아주 한산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터미널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날씨는 한층 더 따뜻해져 20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고, 햇빛은 걸리는 것 없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햇빛 아래에 있을 때는 입고 왔던 외투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뜻했는데, 그늘에 들어가거나 바람이 불면 또 추운 것이 요상한 날씨였다. 

 

숙소는 터미널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작은 호스텔이었다.

숙박비가 매우 저렴해서 도미토리 대신 1인실을 잡을 수 있었다.

 

영상의 시작에 나오는 오른쪽 건물이 바로 숙소. 

오렌지색 창문이 아주 아름다운 우아한 건물이었다. 뭔가 시골집에 놀러 온 느낌이 들었던 기억....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길래 전화를 걸었는데, 주인아저씨가 바로 내려와 맞이해주었다. 오늘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ㅎ;;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기대를 하고 왔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주 편하게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하루에 거진 3만 보 씩 걷는 강행군을 하기도 했고, 그 전날 과음 + 같은 방의 코골이 빌런을 만나 고생했기에...

 

조금 이른 체크인을 받아주셔서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포르투갈 남부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식당을 찾아보는데, 여행객이 별로 없어 장사가 안돼서 그러는 건지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 건지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라고스까지 와서 포케를 먹었다. 그런데 내가 먹어봤던 포케중에 제일 맛있었던 게 놀람 포인트... 저 주스는 무슨 디톡스 주스라고 했는데 디톡스라고 하기엔 너무나 달달하고 맛있는 딸기 쉐이크 맛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가는데 길가의 가로수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포르투갈 남쪽은 물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까지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를 계속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베리아 반도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저 오렌지를 따서 먹어도 상관은 없다고 했는데, 관상용이라 맛이 아주 쓰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ㅎㅎ

 

숙소에 도착해서는 그냥 이대로 쉴까 한참을 고민하다 라고스에 1박만 하는데, 심지어 내일 아침 일찍 파루로 떠나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휩싸여 결국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도 별다른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었는데, 이때 걸으며 만났던 풍경들이 정말 레전드급이었다. 별도의 설명이 딱히 필요 없는 풍경들. 사실 라고스 1박을 굳이 했어야 했나 살짝 후회가 될 뻔했는데, 오히려 1박만 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는길. 이때 이미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오니 아담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따뜻했지만 수영하기에는 물이 좀 차가웠는데, 그런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열심히 바다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바닷가 옆쪽으로는 절벽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절벽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절벽길을 걸으며 라고스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포르투갈 남부는 일정에 없다가 지인의 추천에 무작정 넣은 곳이었는데, 왜 내가 여길 1박만 하고 지나가려 했을까 정말 통탄을 했었다... 일정을 바꾸자니 뒤에 예약해둔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바꿔야 했기에...

라고스에 있는 동안 이곳의 풍경을 최대한 많이 담아두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절벽 밑으로는 숨겨진 듯 자그마한 해변이 곳곳에 있었는데, 어떤 해변은 아예 배를 타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었다. 나중에 이런 숨겨진 해변을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진작에 찾아서 신청할걸...

 

절벽 아래에 있는 해변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와 걷다가 우연히 웬 허리 높이 정도의 흙더미 너머로 사람 한 명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대체 뭐가 있나 싶어 그쪽으로 향했는데, 아주 놀라운 해변이 있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아래 작은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대략 이런 느낌... ㅎ

탐험을 하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혹시 라고스에 가게 된다면 무조건 더 따뜻할 때 가야지.

이런 해변을 찾아가서 왕창 물놀이를 할 것이다.

 

이 숨겨진 해변에서 한참 멍을 때리며 작은 틈새로 파도가 치는 것을 구경했다.

 

혹시나 라고스로 가시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무조건 2박 이상 하시길... 무조건...  ༼;´༎ຶ ۝༎ຶ`༽  

 

그렇게 약 2시간 반 정도의 절벽길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앉아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어렸을 때는 왜 굳이 굳이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 테라스에 앉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요런 요상한 설정샷도 찍었었나보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는데, 석양을 받은 숙소 건물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맨 위층의 덧창이 열린 창 2개가 내 방의 창이었다.

저녁은 근처의 바에 가서 엠파나다와 샐러드를 시켜서 먹었다. 물론 와인도 한 잔 더...ㅎ

난 저 엠파나다가 포르투갈 음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미 음식이었다... 생김새도 만두랑 비슷한 것이 맛도 아주 한국인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특히 저 갈릭 랜치소스가 환상적이었다.

샐러드는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맨날 고기와 생선과 튀긴 감자만 먹어서 야채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켰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낮만큼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항구가 밝은데도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깨끗하게 잘 보였었다. 미세먼지 없는 시골의 하늘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늘에서 별을 이렇게 올려다본 게 얼마만이었는지.

 

항구까지 내려와 한 바퀴를 둘러보고 숙소로 들어가 일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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