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숙소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말라게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도착할 수 있었던 숙소.
정류장에 내리니 멋드러진 석양이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말라가는 별 생각 없이 인터넷에서 좋다는 후기만 읽고 가기로 결정했던 곳인데, 여행을 하며 조금 더 리서치를 하다 보니 론다나 코르도바에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멋진 석양을 보고 마음이 풀렸다.
숙소는 평점이 아주 높은 곳이었는데, 도착하고 나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스페인에 시골집이 있다면 이런느낌이 아닐까? 라는 인상을 받았다. 친절한 주인아저씨와 강아지, 그리고 미쳐버린 분위기의 테라스까지.
저녁은 나가서 먹을까 하다가 근처에 까르푸가 있길래 재료를 사서 간단히 만들어 먹기로 했다. 메뉴는 바질 페스토 파스타였는데, 이유는 파스타와 소스가 미친듯이 저렴해서. 생면 파스타가 1.5유로, 바질 페스토 소스가 2유로였다. 맥주 한 캔과 후식으로 먹을 사과까지 사들고 와서 파스타를 대충 만들고는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테라스에서는 별이 보였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가니 숙소에 묵는 다른 게스트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뭔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누군가가 모바일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다비드라는 친구였는데, 리그오브레전드를 오늘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왜 귀중한 시간을 이런 스레기게임을 하는데 태우려고 하냐고 농담을 던졌는데,
자기에게 시간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시간낭비 할 게임을 찾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는데 깊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초장부터 야스오를 잡는, 싹수가 노란 사내였기에 옆에 앉아 1:1 과외를 잠시 해주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대부분 2주 이상 숙소에 묵고 있는 장기 여행자들이었다.
역시 이런 숙소는 장기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듯했다. 화려하거나 아주 쾌적하지는 않지만, 가격이 아주 저렴하고 해변이 바로 앞에 있기도 하고, 또 그 특유의 여유로우면서 친근한 분위기가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하는 숙소였다.
다비드가 내게 한국인은 처음 만나봤다며 술을 한 잔 하러 나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저녁을 먹으면서도 맥주를 마셨고 그 전날까지 계속 술을 마셔댄터라 정중히 사양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12월 10일 금요일.
느지막히 일어나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는 말라가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다.
말라가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이 바로 건축물들이었다.
개성 있는 건축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연식이 조금 되어 보이는 것을 보니 7~8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는 전날 숙소의 스탭이 추천해준 수산시장을 갔는데, 느낌상 눈퉁이를 씨게 맞은 것 같았다. 새우튀김을 사서 먹었는데 가격도 비쌌거니와 맛이...ㅎ; 사진도 안 찍어 놓은걸 보니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다. 역시 이런 관광지의 수산시장은 말이 안 통한다면 안 가는 게 맞는 걸로..
그렇게 실망스러운 점심을 먹고는 말라가 시내 구경을 좀 하다 말라가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히브랄파로 성으로 향했다.
20분 정도를 열심히 걸어 올라간 히브랄파로 성.
언덕이 꽤나 가팔라서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다가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올랐던 곳.
12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해서 성 위에 올라가니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고생을 보상해 주는 듯 성에서 내려다본 말라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얼핏 보이는 알카사르와 말라가 대성당.
웬 갈매기가 멋있게 서있길래 한 컷 찍어줬다.
한 시간 정도 히브랄파로 성에서 풍경과 바람을 즐기다 숙소로 내려왔다.
성에서 숙소까지 바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언덕을 따라 걸어내려 가는데, 절벽에 옹기종기 지어진 집들이 참 멋있었다.
유럽 부자들은 은퇴하고 이런 해변도시에서 여생을 즐긴다는데, 나도 언젠간...
12월에도 따뜻한 스페인 남부답게 여기저기 꽃들도 피어 있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기도 했고, 마침 한국의 맛이 그리워졌던 참이라 근처 중국 슈퍼에서 불닭볶음면을 하나 사서 간식으로 끓여먹었다.
냠냠굿~
불닭볶음면을 뚝딱 해치우곤 샤워를 하고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석양을 보러 바닷가로 다시 나갔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숨 막히는 석양.
해변에는 나와 앞에 있는 저 커플밖에 없었다.
감히 어떠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바다와 하늘.
그저 카메라로 그 감동을 그대로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을 뿐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숙소로 다시 들어갔다.
한껏 들떠 숙소에 있던 직원(어제 내게 수산시장을 추천해줬던) 발렌티나에게 석양이 정말 미쳤다고 봤냐고 떠들어댔는데, 발렌티나는 매일 있는 일이라는 양 말라가의 석양은 정말 멋지다고, 자기가 말라가에 머무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심드렁하게 대꾸를 해주었다. 이런 광경을 매일 볼 수 있다니...
12월 11일 토요일
드디어 고대하던 그라나다로 떠나는 날.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체크아웃을 한 후 전날 눈여겨보았던 퐁피두 센터 분관을 가기로 했다.
말라가는 피카소가 태어난 도시로, 그 때문인지 미술관들이 정말 많은데 그 콧대 높은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가 분관을 낸 도시이기도 하다.
언젠가 듣기로는 서울에도 분관을 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암튼, 생각보다 컬렉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작품들이 꽤나 많았던 듯?
재미나게 둘러보고 나왔는데 시간이 또 애매하게 남아서, 근처 젤라또 집에서 젤라또를 하나 사 먹고 항구에서 시간을 때우다 그라나다행 버스에 올랐다.
모처럼의 여유와 휴양을 즐길 수 있었던,
여러모로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웠던 말라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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